거래 불투명성·정보 비대칭성은
우리 토지시장의 고질적 문제
토지 실거래가 정보 공개 플랫폼 만들어
진통 있었으나 데이터 기반 거래문화로
김범진 밸류맵 대표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거래 불투명성과 정보 비대칭성은 우리 토지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LH 사태도, 기획부동산도 그렇죠. 과거보다 많이 해결되고 있지만 불투명성과 비대칭성은 여전히 있어요. 토지시장의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면 어느 정도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밸류맵은 시작됐습니다.”
김범진 밸류맵 대표가 토지·건물 정보 플랫폼을 만들게 된 이유는 이랬다. 감정평가사로 근무할 당시 현장에 나갈 때면 그는 괴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감정평가사에게 당연한 거래 데이터가 다른 이들에겐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게 의아했던 모양이다.
“시세를 파악하려면 그 일대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어요. 그렇다 보니 지역 공인중개사 개인의 경험이 토지거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죠.” 공인중개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시장 풍토는 기획부동산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밸류맵은 정부가 제공하는 토지 실거래가 정보를 지도 위에 표시했다. 누구나 원하는 곳의 거래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국내 최초였다. 2017년 7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밸류맵은 이렇다 할 홍보도 없이 금세 입소문을 탔고 토지 관련 정보업체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진통도 있었다. 특히 공인중개사들의 저항이 셌다. 김 대표는 지난 18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전화통에 불이 났다. 거래내역을 내리라는 요구에 매일 시달렸다”고 회고했다. “부동산 매매는 말하자면 매도자와 매수자의 협상 결과에요. 매도자 입장에선 누군가 자기 자산을 비싸게 사줘야 하는 건데 기존 가격정보가 알려져 있다면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본능적 저항감이었을 겁니다.”
김범진 밸류맵 대표 |
김 대표는 단호하게 서비스를 이어갔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도 아니었고 문제될 게 없었다. 거래 불투명성과 정보 비대칭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의 판단은 옳았고 거래문화가 바뀌었다.
김 대표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상황이 역전됐다. 거래 정보를 반영해달라는 제보가 많아졌다. 공인중개사들이 영업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지금은 공인중개사들이 더 좋아해요.” 그는 전했다.
밸류맵은 기획부동산을 추적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매매패턴을 분석해 기획부동산 정보를 공개했고 이는 경기도의 토지거래허가지역 지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기획부동산 문제를 언급하자 김 대표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획부동산은 토지정보 비대칭의 끝판왕”이라며 “인간의 욕심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사기로 당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고 분하겠지만 본인 행위에 대해 반성할 부분도 있다”고 쓴소리했다.
밸류맵은 앞으로도 비정상 토지거래 정보를 공공에 제공할 계획이다. 일종의 사회공헌이냐 물었더니 허허 웃어보였다. 그는 “거창한 책임감까진 아니다”라고 손사래 쳤지만 “토지시장에 긍정적인 기여를 해야 소비자들이 우리 서비스를 계속 이용해주지 않겠냐”고 되묻는 그의 얼굴에선 왠지 모를 사명감이 느껴졌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터지면서 토지시장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김 대표는 “토지투자로 돈을 버는 것은 늘 있어 온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부당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땅을 산다는 경제행위 자체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물론 세금이라는 사회적 책임은 다해야죠.” 그는 덧붙였다.
감정평가사 출신인 김 대표는 공시가격 문제도 비슷한 시각에서 봤다. “과세형평성 측면에서 공시가격 인상은 필요한 일이에요. 특히 토지의 경우 대표적으로 ‘역진세’가 적용되는 곳이죠. 사회의 투자로 발생한 부가가치 일부를 환수하는 것에 대해 감당하는 것이 성숙한 재산권 문화가 아닐까요.”
김범진 밸류맵 대표 |
밸류맵은 실거래가와 함께 중개 사례, 거래이력, 매물, 경매, 대출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다세대 주택 가설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모든 서비스는 현재 무료다. 올해부터는 검색트렌드를 시작으로 유료서비스도 개시할 계획이다.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치평가 모델을 구축하는 것도 밸류맵의 목표다.
김 대표는 “토지시장은 넓게 보면 중개부터 설계, 시공, 토목, 대출 등까지 연결된다. 이들 경험은 각각 떨어져 있지만 개인이든 법인이든 소비자의 입장에선 결국 부동산을 매입해 이용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모든 과정을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하는 것이 밸류맵이 지향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밸류맵에서 마음에 드는 땅을 고르는 것부터 계약을 하고 대출을 받고 설계사를 구하고 시공을 맡기고 임대관리업체를 찾는 일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게 김 대표의 포부다. 그는 “데이터가 인색하고 부족했던 시장이었는데 이제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충족됐다”며 “땅 위에 벌어지는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나로 잇는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