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효율·주주환원 차이
혁신·신사업 성과 엇갈려
이재용 M&A 성과 중요
아이팟(iPod)이 처음 출시된 2001년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318억 달러로 장을 마친다. 애플 시총은 77억 달러로 삼성전자의 1/4에도 못 미쳤다. 1세대 아이폰이 발표된 2007년 두 회사의 기업가치는 역전된다. 이 해말 시총은 애플이 1740억 달러로 873억 달러인 삼성전자의 2배에 달한다. 이후 격차는 계속 벌어져 올 1월3일 기준 시총은 애플이 2조9130억 달러, 삼성전자가 3937억 달러까지 확대됐다. 2001년 이후 지난 3일까지 시총은 애플 376.8배, 삼성은 11.4배가 커졌다.
삼성전자 보다 기업가치가 8배 이상 큰 애플이지만 덩치로 보면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자산과 자본은 삼성전자가 더 크다. 매출과 순이익에서 애플이 앞서지만 근소한 정도다. 그러면 두 기업의 가치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재무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자본 규모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삼성은 2500억 달러에 달하지만, 애플은 650억 달러에 불과하다. 비슷한 이익규모라도 자본이 작으면 자본수익률(ROE)이 높아진다. 주주 입장에서는 그만큼 투자 효율이 높다는 뜻이 된다. 지난해 3분기 석 달 ROE만 따져도 애플이 삼성전자의 4배 이상이다. 애플은 막대한 이익을 배당과 자사주매입 소각 등으로 주주에 환원하면서 자본규모를 최적화했다.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애플과 삼성전자의 차이는 발견된다. 애플은 iOS라는 자체 운영체제(OS)를 지키면서 생태계 확장을 이뤄왔다. 반면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환경에서 중국 등 후발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다. 스티브 잡스 이후에도 애플은 애플워치, 에어포드 등 하드웨어 신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했다. 삼성은 하드웨어 자체의 높은 완성도에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도 이끄는 데서는 애플에 뒤쳐졌다.
애플은 독자 OS를 바탕으로 최근 음악, 영상, 컨텐츠, 건강 등 소프트웨어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가장 유망한 분야로 꼽히는 메타버스와 전기차·자율주행차 시장 진출도 예상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라는 막강한 현금창출원(cash cow)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인 메모리반도체는 사실상 원자재 성격이 강해 새로운 가치(value)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은 팀 쿡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각종 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졌고, 이재용 부회장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애플 시총은 한때 3조 달러를 넘었지만, 전문가들은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애플의 미래사업 가치를 감안할 때 30배가 넘는 주가수익비율(PER)도 높지 않다는 평가다. 애플의 S&P500 내 비중은 7%에 달한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 간접투자자금은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 상품으로 유입되고 있다. 시총 비중이 높은 종목 중심으로 유동성이 계속 유입되는 환경이다. 개인의 직접투자자금은 콜옵션을 통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앤비디아, 알파벳, 메타(페이스북) 등으로 유입되고 있다. 애플을 중심으로 한 빅테크 주식들이 미국 증시까지 견인하는 셈이다.
제조업 유전자인 삼성전자가 자체 제조기반을 갖지 않는 애플처럼 소프트파워를 발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마 삼성전자 PER도 상당기간 현재의 15배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변수는 있다. 인수합병(M&A)이다. 특히 바이오 부문은 삼성만의 ‘비대칭전략’이 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역량이 다 발휘되지 않았지만 기업가치는 이미 100조원을 바라볼 정도다. 삼성전자가 M&A로 새로운 혁신에 성공해야만 애플과의 경쟁은 물론 한국 증시의 레벨 업이 가능할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