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유연성 위험 간과, 마구잡이 매수
사모펀드 사태 겪고도 교훈 얻지 못해
선순위 투자 아니면 대규모 손실 위험
연기금·공제회도 적극적, 파장 커질수
국내 금융권 투자실력 한계 거듭 확인
2019년 금융권은 사모펀드 사태로 홍역을 치른다. 해외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와 라임펀드 등의 비정상적인 판매와 운용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문제 많은 상품을 팔아 돈을 번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 관심은 관련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제재할 수 있는 지에 쏠렸다. 그래서인지 금융권은 사모펀드 사태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 오랜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이번에는 부실한 해외 부동산 투자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관투자자들은 증시 부침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한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 자산을 모색했다. 국채는 안전하지만 저금리로 충분한 수익(yield)을 내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증권사와 운용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손쉽게(?) 돈을 벌기 시작하던 때다. 해외부동산은 정기적인 임대수익에 자산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마침 원화 가치도 높아져 해외투자에 유리했다.
금융위기 이전 해외펀드 열풍 때처럼 너도 나도 해외부동산에 뛰어들었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부동산시장에서는 중국이 가장 큰손이었고 그 뒤를 한국이 이었다.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큰손들이 내놓는 매물을 이들이 소화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2008년말 해외펀드 설정액 77조원 가운데 부동산펀드는 2.28%인 1조8000억원에 불과했다. 올 6월말 해외펀드 설정액은 300조원, 부동산펀드는 76조원으로 25%가 넘는다.
해외부동산투자가 폭증한 것은 2016년부터다. 2015년 증시 폭락을 겪은 중국이 자본유출 통제에 나서면서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 빈 자리가 생겼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중개회사의 부동산 영업은 자연스레 한국에 집중됐다. 자가용 비행기로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을 만나러 오는 중개인들도 상당했다. 모건스탠리캐피탈그룹인덱스(MSCI) 실물자산 자료를 보면 한국은 2019년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외부 투자자였다. 2019년에만 18조5000억원을 거래할 정도였다.
미국은 물론 홍콩 부동산까지 한국투자자들의 자금이 넘쳐났다. 국내에서 부동산 불패의 맛을 본 자금들이 몰린 덕분이다. 짧은 기간에 왕창 사들였으니 값을 높여 비싸게 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국 투자자들이 사들인 상업용부동산의 최근 가격 하락폭이 시장평균 보다 깊은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비싼 값에 거래를 성사시킨 IB들과 중개인들은 두둑한 수익을 챙겼다. 일본도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강세가 되자 해외 부동산 쇼핑에 무리하게 나섰지만 결국 ‘호구’가 됐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수(exit) 전략이다. 부동산은 일물일가의 법칙이 적용된다. 입지와 환경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다. 늘 유동성 위험을 경계애햐 한다. 게다가 덩치가 큰 상업용 부동산은 거래가 쉽지 않다. 제때 팔지 못하면 부득이 장기 보유해야 한다. 부동산 투자는 대부분 대출을 수반해 금리변화에 민감하다. 단기 뿐 아니라 중장기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길게 보유하면 개보수 비용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부동산 투자에서는 이런 위험들이 과소평가 됐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올해부터 2025년까지 해외부동산펀드 만기물량은 전체 설정액의 40%에 육박하는 30조원에 달한다. 만기에 건물을 제때 팔지 못하면 재대출(refinancing)이 필요하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수익성이 악화된다. 공실까지 늘어난다면 설상가상이다.
미국 부동산서비스업체 CBRE가 집계한 올 3월 말 전세계 오피스 공실률은 12.9%로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정점이던 2009년 13.1%에 버금간다. 미국 주요 도시인 LA와 샌프란시스코 등은 20% 이상이고 유럽 도시들도 20%에 육박한다. 금리상승과 비대면 문화 확산의 결과다.
요즘 전세계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직원들을 출근시키기 위해 최신 시설을 갖춘 사무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한국 투자자들은 장기임대 계약만 돼 있으면 입지나 친환경등급, 개보수 비용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미래 수요가 제한적인 구식(2등급) 빌딩을 주로 사들였다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갑작스런 코로나19로 인한 수요흐름 변화는 불가항력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달리보면 수효 흐름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준비가 덜 됐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펀드 만기에 재대출이 여의치 않으면 어쩔수 없이 헐값에라도 팔아야 한다. 선순위 투자자라면 웬만큼 헐값에 팔아도 원금 손실은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중순위나 후순위 투자자라면 헐값 매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부동산 투자이지만 원금 대부분을 날리는 결과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선순위가 아닌 투자를 상당부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면서 위험분산을 위해 일부는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개인고객에게 판매(sell down)까지 했다. 결국 기관들을 믿고 투자한 개인들까지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된 셈이다.
해외부동산 투자에는 연기금과 공제회도 적극적이었다.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가입자들의 노후 자금에도 상당한 타격이다. 일부 공적연기금과 공제회는 국민들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출 둔화로 최근 경상적자가 심각하다. 해외부동산 투자 실패로 막대한 달러가 증발한다면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다. 단기간에 엄청난 국부가 특정자산으로 몰리는 상황을 방치한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감독당국이 개별 기관투자자의 투자전략에 간섭할 수는 없다. 결국 경영진의 판단이 중요하다. 기관투자자들의 전문가들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금융투자의 수준이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