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첫 탄소배출량 보고 기한이 이달말로 다가오면서 국내 중소 수출기업 1700여곳이 혼란에 빠졌다. 당장 오는 31일까지 의무적으로 지난해 4분기 수출제품의 탄소배출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준비가 모자라 페널티(과태료)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포스코나 현대제철 같은 대기업은 일찌감치 대응시스템을 갖추고 보고를 마쳤지만, 그렇지못한 많은 중소 기업은 당장 본격화된 유럽연합발(發) 환경규제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됐다.
CBAM은 EU가 수입 제품의 생산·제조과정에서 생기는 탄소배출량에 따라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대상은 철강, 시멘트, 전기, 비료, 알루미늄, 수소 등 6개 품목을 EU에 수출하는 기업이다. EU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그 명분이지만, 우리로선 일종의 신(新)관세장벽이다. CBAM이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것은 그래서다. EU 수출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환산하면 연간 3000억∼5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 CBAM의 타깃이 된 수출기업은 1700여곳으로, 한국의 대(對)EU 수출액 중 약 7.5%인 51억달러(약 6조8000억원·2022년 기준)의 품목이 탄소배출량 신고 대상이다. 우리 수출 구조에서 그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1차적 책임은 준비에 소홀했던 기업에 있다. 탄소중립을 표방한 EU는 2019년께 탄소국경세를 추진했고, 지난해 5월 해당 규정을 최종적으로 발효했다. EU의 거센 환경규제 물결에 대응할 시간은 조금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많은 중소기업이 최근 현지 고객사들로부터 배출량 신고 자료를 당장 제출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허둥대고 있는 게 현장 분위기라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기업활동을 지원해야 할 정부의 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U에서 요구하는 탄소배출량 계산 방법은 워낙 복잡해서 웬만한 기업도 보고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정부 차원의 총력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정부는 범부처 대응 전담팀을 운영중이지만 상담 창구는 제각각이다. 산자부 헬프데스크는 규정 등 개념 관련 질의를, 환경부 헬프데스크는 탄소배출량 산정 방법에 대한 조언을 담당한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컨설팅 효율화를 위해 창구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게다가 중소벤처기업부는 불과 열흘전 쯤에야 부처내 전담 지원조직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니 ‘뒷북 행정’ 소릴 듣지 않을 수 없다. EU 뿐 아니라 미국도 만지작 거리고 있는 탄소국경세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