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아파트 사랑은 유별나다. 좁은 땅에 건물을 높게 올리는 구조적 한계 탓에 사생활침해, 층간소음, 주차난 등 불편함이 한 둘이 아니지만, 아파트 선호는 시간이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골프연습장과 수영장도 모자라, 영화관, 호텔밥까지 주며 아파트의 진화는 거듭되고 있다.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아파트가 점점 더 화려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게다. 문제는 살고 싶다고 모두가 다 아파트에 살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빌라와 오피스텔, 다가구에 거주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선호도 차이 만큼이나 가격 차이는 상당하다. 그리고 이 격차는 최근 더욱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여파에 이른바 비(非)아파트 시장이 초토화되면서다.
최근 각종 보도를 통해 전세가격이 반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이 또한 모두 아파트에 국한된 이야기다. 비(非)아파트는 사면초가다. 빌라, 다가구,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 생활형숙박시설까지 예외가 없다. 대표주자 빌라는 세입자를 구하는 게 하늘에 별따기다. 그나마 간신히 구한 세입자도 대부분이 월세고, 전세를 살려는 이들은 사실상 전멸 상태다.
금리에 취약한 오피스텔은 최근 경매가 급증하고 있다. 한때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으며 막대한 투자자를 불렀던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생숙을 주거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하면서, 이들은 졸지에 불법 신세가 됐다. 올해 말까지 주거시설인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하지 않거나 숙박업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 폭탄이 떨어진다. 2~3년 전 분양했던 생숙이 올해와 내년 1만3000여실 가량 준공될 예정으로 파악되는데, 향후 상당한 사회적 갈등을 피하지 못할 것 같다.
다양한 변수에 따라 시장이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을 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악의 국면을 지나는 비(非)아파트 시장의 현 상황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쳐 장기적으로 시장의 건전성을 키우는 효과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 상황을 결코 가벼이 보기 힘든 데는 이들 비(非)아파트의 거주자들 대부분이 서민이어서다.
정부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내정자 시절부터 “과거 오랫동안 갖고 있던 아파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비(非)아파트 시장의 정상화에 상당한 정책적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이후 1.10 대책에서 다양한 지원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반쪽 대책이었다. 다가구, 빌라, 도시형생활, 주거용 오피스텔 등을 구매하면 취득세, 양도세, 종부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향후 2년간 지어지는 소형주택으로 한정해 수요 진작에 큰 한계점을 나타냈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기존 비(非)아파트 시장의 정상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 비(非)아파트 주택 소유자들만 역차별하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가 아닌, 기존 공급된 소형 오피스텔의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러니 그렇잖아도 양극화되는 자산 시장에서 상대적 약자인 비(非)아파트 소유자와 거주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