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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산에서 먹으니 더 맛있죠?” 라면국물은 어쩌시려고 [지구, 뭐래?]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땀도 흘렸고 공기도 시원한데, 세상에서 젤 맛있는 라면이죠.”

주말이나 휴가 때면 등산을 즐긴다는 박모(42) 씨. 특히 그가 가장 행복(?)한 건 등산 후 먹는 컵라면이라고.

박 씨는 “보온병에 뜨거운 물 받아가서 컵라면 하나 먹을 때가 등산의 가장 큰 묘미”라고도 했다. 그에게 먹고 남은 라면 국물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억지로라도 다 먹죠. 한 번도 국물을 버리고 온 적은 없어요.”

[게티이미지뱅크]

등산해보면 안다. 정상에서 보면 꼭 있다. 안 보여도 냄새로 안다. 컵라면을 먹는 등산객. 그래도 모든 등산객이 박 씨만 같아도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민족의 명산, 한라산. 여기에서 하루 나오는 라면 국물만 무려 100ℓ가 넘는다. 그나마 국물을 모으는 통이 있으니 이정도다. 통이 가득 차면, 또 무심코 산에 버려지는 라면 국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라산국립공원이 공식 SNS을 통해 “생태계 교란이 일어난다”고 호소에 나섰을 정도다. 등산 컵라면, 꼭 먹어야 할까? 굳이 먹어야 한다면, 제발 다 먹으면 안 될까.

[한라산국립공원 SNS 캡쳐]

한라산국립공원은 SNS에 ‘한라산에서 라면국물을 버리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공원 측은 “라면 국물엔 염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서 계곡 물줄기를 따라 버려진 라면국물이 물속에 살아가는 수서곤충이 오염된 물속에서 살 수 없게 된다”고 호소했다.

또 “청정한 물속에서만 살아가는 날도래, 잠자리 애벌레인 수채, 제주도롱뇽등이 염분에 노출돼 살아갈 수 없게 된다”고도 했다.

이뿐 아니다. 대피소 인근으로 큰부리까마귀, 오소리, 족제비 등이 라면 냄새를 따라 접근,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하는 등 생태계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공원 측의 설명이다.

한라산에서 등산객들이 가장 라면을 즐겨먹는 장소 중 하나가 윗세오름. 대피소가 있기 때문에 인근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로 컵라면을 먹는 게 마치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SNS에서도 인증샷이 인기다. “한라산 정상에선 라면이지?”, “라면·김밥 맛집, 한라산 윗세오름” 등의 글과 함께 한라산에서 라면을 취식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알리는 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공원 측은 등산객의 라면국물을 버리는 행위에 대비, 국물을 담을 통도 배치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이 모이는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많을 때엔 하루에 100ℓ 이상의 국물이 모이기 때문이다.

한라산뿐 아니라, 주요 산마다 등산객의 라면 취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 컵라면을 취식하는 행위는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남은 국물을 그대로 버리는 등산객도 많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국물을 버리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

공원 측은 “라면국물에 함유된 염분 때문에 라면국물을 버리면 한라산 만의 고유한 특산식물 등이 오염된 토양에서 살아가게 되고 그로 인해 멸종돼 가고 있다”고 전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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