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재 중용되도록 ‘인사’ 개선
컨트롤타워 부활 ‘전략 관리’ 강화
이재용 회장 등기임원 복귀 시급
“기술·인사·관리의 삼성 부활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6일 필리핀 라구나주 칼람바시에 위치한 삼성전기 필리핀법인(SEMPHIL)을 찾아 MLCC 제품 생산현장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자로 취임 2년을 맞았다.
지난 2022년 10월 27일 회장에 오른 이재용 회장은 최근 사업 전반에 걸친 부진과 경쟁력 약화로 ‘삼성 위기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여느 때보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 2주년을 맞게 됐다.
이 회장은 27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현대 N×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에 참석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이 각별히 챙기고 있는 전장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대내외 복합위기가 얽힌 시점에 이 회장과 삼성은 무거운 분위기로 취임 2주년을 보내는 모습이다. 28일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항소심 3차 공판을 거쳐 31일에는 삼성전자 3분기 확정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다음달 1일은 삼성전자 창립 55주년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시장 예상치에 못 미치는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특히 전체 영업이익의 70%를 담당하는 반도체 사업의 부진이 확인되면서 위기론에 불을 지폈다.
각계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불러온 급격한 변화에 삼성전자가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위기 극복을 위해 유능한 기술인재 중용과 조직문화 혁신 등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이 회장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했던 내용들이기도 하다.
또한, 삼성의 전체 사업을 조망하며 미래 전략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 재건’ 목소리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재계는 오는 11월 말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 위기 극복을 위한 이 회장의 조직 구상과 사업 전략이 담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장은 취임 전후 줄곧 ‘기술’을 강조해왔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2주기였던 2022년 10월 25일 사장단 간담회에선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2월 삼성전자 온양·천안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올해 1월 사내 최고 기술 전문가로 선정된 ‘삼성 명장’들을 만나 “기술인재가 마음껏 도전하고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기술인재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이 회장의 발언에는 위기의식이 더욱 강하게 묻어나기 시작했다. 2월 말레이시아 출장길에 찾은 삼성SDI 임직원들에게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자.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주문했다. 3월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직원 간담회에서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선행 기술 확보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6월 미국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와의 미팅 후 경영진에게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 해내고 아무도 못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며 과거 삼성의 강점을 되살려 과감한 도전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내·외부에서는 이전만큼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로 인해 도전정신이 전보다 약해졌다고 말한다.
박재근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보신주의’를 언급하며 “좋은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막상 도입하면 실패할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질 것부터 강조하다보니 결국 도전 자체를 안 하게 된다.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를 통해 도전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A씨는 “이병철 회장 시절 반도체 사업의 실패를 우려해 반대가 있었지만 밀어붙인 결과 30~40년 후에 꽃을 피웠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도 3분기 잠정 실적 발표와 함께 발표한 사과문에서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도 다시 들여다 보고 고칠 것은 바로 고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20년 넘게 기술 전문가로 재직했던 B씨는 임원들이 단기 성과 위주로 평가 받으면서 눈 앞의 이익에 매몰된 점을 지적했다. 기술 전문가들의 의견보다 리더의 입맛에 맞는 보고를 칭찬하고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기술인재의 이탈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B씨는 “과거 삼성은 인사로 성공했지만, 지금은 정말 똑똑하고 기술에 진심인 30~40대 인재들이 반대 의견조차 쉽게 내지 못하고 윗사람한테 지적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며 “관료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적극적인 외부 인재 수혈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내부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력을 끌어올리려면 결국 외부에 있는 좋은 전문가도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한다”며 삼성이 폐쇄성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삼성전자가 기존에 익숙한 성공 방정식에 더 이상 안주해선 안 된다며 조직문화의 혁신을 재차 강조했다.
B씨는 “정해진 규격대로 파는 범용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나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그에 맞춰 가며 하는 사업”이라며 “오랜 기간 ‘갑’의 위치로 사업을 해온 삼성이 ‘을’에 해당하는 파운드리와 HBM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 강화와 재도약을 위해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및 과거 미래전략실 같은 컨트롤타워의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를통해 HBM 투자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의 실기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준법경영을 감시하고 있는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5일 발간한 연간 보고서에서 “경영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현재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이다.
그는 2016년 10월 삼성전자 사내이사를 맡으며 등기임원이 됐으나 2019년 10월 임기 만료로 물러났다.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으로 2021년 1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받아 취업제한으로 등기이사에 복귀하지 못했다.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걸림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미등기 임원이다.
올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으로, 여전히 사법 리스크가 이 회장과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이 회장은 오는 28일 항소심 3차 공판에 출석할 예정이다. 김현일·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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