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74)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탈출했다. 이에따라 15일 푸아드 메바자(77) 국회의장이 벤 알리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할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1987년 당시 하비브 부르기바 대통령을 무혈 쿠데타로 축출한 이후 23년 넘게 권력을 장악해온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해말 한 청년이 졸업후 취직을 못해 무허가로 청과물 장사를 하다 경찰 단속에 걸려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높은 실업률과 물가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 현장에서 사망자가 속출하자 시위는 정권 퇴진운동으로 이어져 결국 벤 알리 대통령이 물러나게 된 것이다. 벤 알리 대통령은 14일 시위가 거세지자 간누치 총리를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뒤 가족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사실상 망명했다.
메바자 임시 대통령은 이날 취임 선서를 한 뒤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에게 국가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통합 정부를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TV 연설에서 야당을 포함한 모든 정파가 예외없이 국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튀니지 헌법위원회는 이날 벤 알리 대통령의 축출을 공식화하고 임시 대통령직은 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맡도록 돼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헌법위원회는 또 앞으로 45~60일 내에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튀니지 정부는 전날 벤 알리 대통령 일행의 출국 과정에서 잠정 폐쇄됐던 영공을 이날 오전 재개방하고 모든 공항의 운영을 정상화했다.
한편 벤 알리 대통령을 쫓아낸 민중봉기에 대해 서구 언론과 네티즌들은 ‘재스민 혁명’으로 부르며 아프리카와 아랍 민주화 씨앗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재스민은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는 튀니지 국민을 축하ㆍ지지하는 메시지가 넘치고 있으며 튀니지의 상황은 ‘알 자지라’방송을 통해 수억명에게 전파됐다.
아랍국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며 담담한 반응을 내놨지만 서방 국가들은 튀니지 국민들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나타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튀니지 국민들의 용기를 치하한 뒤 튀니지 정부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지지한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프랑스, 독일 등도 튀니지에 대한 지지 입장과 민주주의 정착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수도 튀니스에서는 중앙역 청사가 불에 타고 시내 대형 할인매장과 상점이 폭도들에게 약탈당하는 등 혼란이 벌어졌다. 튀니지 동부 휴양도시 모나스티르에 있는 교도소에서는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재소자 50여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탈옥을 시도하던 중 교도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dap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화재는 재소자들이 취침용 매트리스에 불을 질러 일어났으며 불이 난 틈을 타 일부 재소자가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