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웠다. 날카로웠다.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정운찬 발(發)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반응은 그랬다.
이 회장은 10일 전경련회장단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와 만나 “이익공유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경제학 책에서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직격탄이다.
바로 이틀 전, 이 회장은 부드럽고 겸손했다. 지난 8일 평창올림픽 유치 지원 차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그를 김포공항에서 만났을 때 출장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성과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다”며 자세를 낮췄다.
이틀 만에 이 회장의 표정이 돌변한 것은 왜 일까. 업계에선 최소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개인적인 소신을 전제로 한 ‘이익공유제’에 대한 재계의 비판 목소리를 이 회장이 총대를 매고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경제 철학도 맞지 않고, 재계에 되레 큰 부담이 되는 최대 현안에 대해 재계 대표 아이콘으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재계 단체를 상징하는 전경련회장단 회의 자리를 빌어 공개적으로 ‘작심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회의 직전 하얏트호텔 정문에서 기자들을 만났을 때 “어, 기자들이 많이 있네요”라고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상당한 시간을 기자들에게 할애하며 흔들림없는 꼿꼿한 자세로 질문에 답을 했다. 멘트를 자제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그냥 지나치면서 가벼운 답변만 내놓을 수도 있었다.
이 회장이 정부 경제정책을 평가하면서 “과거 10년에 비해서는 상당한 성장을 했다고 본다”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그가 말하는 과거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길게 보면 김영삼 대통령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정부가 많은 기업 규제 혹은 반(反)시장, 반 기업 논리로 기업성장에 부담이 됐던 부분이 적지않았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며 김영삼 정부를 비판한 것을 연상케 한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역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한 것도 상징성이 크다. 며칠 전 정운찬 위원장과 독대까지 했던 정 회장이기에,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재계의 싸늘한 입장 수위가 가늠된다.
재계 서열로 보나, 연배로 보나 이 회장과 정 회장이 이익공유제에 대해 냉랭한 시선을 던짐으로써 재계는 그동안 속앓이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이익공유제 비판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재계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의 발언은 재계 논란거리에 대한 교통정리(?) 차원으로 의미가 있다”며 “재계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으로 과감한 멘트를 서슴지 않은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영상 기자 @yscafe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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