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국가 대재앙 앞에서도 놀랄 정도로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감안한 것이다. 경제대국으로 스스로 재건 능력이 있는 일본은 과도한 남의 도움은 거절하는 성품이 있으며, 위로와 격려부터 다가선 후에야 물적 지원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특수성도 지녔다. 지원의 부피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그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총 3000만위안(당시 환율로 45억원)을 기부했던 삼성이 이번엔 1억엔(약 14억원)을 내고, LG 역시 같은 액수를 기탁하는 등 ‘절제된 기부’를 한 것은 이를 충분히 감안한 것이다. 일본 대표 기업인 도요타, 소니 등이 3억엔(42억원)을 기부했는데, 국내 기업이 이보다 더 내면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등 재계 단체들이 현재 지원 방식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경련 관계자는 “일본에 무턱대고 들어가 도와주겠다고 하면 실례”라며 “진심을 담아 위로하면서 일본 정부나 단체와 충분히 의논을 한 뒤 (결정된) 지원 방법을 택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기업과 단체는 일본 지진 후 구조단을 파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일본 측의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을 잘 아는 그룹 총수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물적 지원에 앞서 애도의 편지를 먼저 일본 파트너사에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구본무 LG 회장은 히타치,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에 이번 지진 사태와 관련해 안타까움을 표한 뒤 “피해 복구에 적극 돕겠다”고 위로 편지를 보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용 사장도 공동 명의로 일본 내 주요 거래업체에 “종업원과 가족이 무사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의 위로 서한부터 발송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신일본제철 무네오카 쇼지 사장, JFE스틸 하야시다 에이지 사장, 스미토모금속 토모노 히로시 사장을 비롯해 미쓰비시 상사, 미쓰비시 금속 등에 위로의 편지를 보내고 직원들에게는 일본 철강사들이 하루빨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고 독려했다.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도 지진으로 고통을 겪는 일본 납품업체 상황을 고려해 “납기일을 독촉하지 말라”고 실무진에게 지시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 지진과 관련한 국내 기업들의 ‘배려 문화’는 앞으로도 있을 글로벌재해와 관련한 산업계 지원 방향의 새로운 트랜드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할 때는 경쟁하면서도 아픔을 같이할 때는 국적을 불문하고 아픔을 같이 하면서, 상대 파트너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배려와 지원을 통해 글로벌 윈-윈을 모색하는 게 키워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번 기회로 국내 업계가 일본 산업계 방식을 이해하고 터득하면서 공감의 폭을 넓히면 한-일 파트너십도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상 기자 @yscafe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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