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워런 버핏 회장은 ’투자의 귀재’ ’통 큰 기부 천사’란 닉네임과 함께 ’오마하의 현인’ 으로 불리운다. 매년 5월 미국 네브라스카 중소도시 오마하에서 장장 3일동안 내로라하는 애널리스트 및 수만 주주들과 직접 향후 투자방향 등을 토론하는 이색 주주총회를 열기 때문이다. 자신이 1000억원을 추가 투자한 공장 기공식 참석차 이번주말 방한하는 버핏 회장은 아마도 2개월 후 오마하에서 예의 환한 웃음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오마하 축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총회꾼에게 뒷돈을 찔러줘야 했던 한국의 주총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기업 모두가 대강당에서 의사봉을 휘두르는 틀에 박힌 주총에 안주한 건 아니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국내에도 외빈 접대 연회장 주총이나 주주 대상 할인행사나 시음회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소속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거나, 주총 현장을 아예 인터넷방송으로 공개하는 연예기획사와 IT회사도 있다. ’짜고 치는’ 주총도 많이 사라졌다. 자산운용사와 연ㆍ기금 등 기관투자가 힘이 커지고, 시민단체와 소액주주 등이 경영감시 활동을 강화한데 따른 긍정적 결과다.
하지만 현실은 대주주 특히 최대주주와 소액주주 대결로 귀결된다. 최대주주는 자기 의지로 선임한 경영진을 전면에 내세워 기업 존폐를 좌우할 의사결정을 뒤에서 조종하곤 한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은 최대주주 주문대로 이익배당 및 이사회 구성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주주총회가 상법상 주식회사의 최고 의결기구로 자본주의의 ’풀뿌리’라는 경영학원론과는 한참 먼 듯하다. 회사는 주주들에게 정관변경과 함께 신사업 진출 등 중장기 경영전략을 설명하고, 최대주주는 경영 실적을 보고 경영진의 유임 여부를 결정하는게 고작이다.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소액주주 또한 그동안 최대주주의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 형사 책임을 애써 외면했다. 경영 대물림을 위해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시가보다 싸게 넘기는 민사상 손해도 모른척 했다. 불가항력 측면이 없지 않으나 생색내기용 주총 선물이나 섭섭하지 않은 배당에 만족한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주주총회 패턴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 펀드)는 ’주총 데이’인 18일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총에서 대주주 경영 퇴진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SDS 주총에 참석, 이건희 회장과 관련한 회계 처리 적정성을 따진다고 한다. 계열사 지원 및 사채 발행 안건을 상정할 효성과 OCI 주총도 시끄러울 듯하다.
코스닥기업인 국보디자인 인선이엔티 소액주주들도 정관변경과 경영진 퇴진 목적의 세 규합에 나섰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SK 동국제강 주총에서 앞서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회장, 장세주 회장 등의 사내이사 선임에 부정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도 더 이상 ’거수기’역할에 머물지 않을 태세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최대주주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주주대표소송은 급증세로 치닫고 있고, 주총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서면ㆍ전자투표제 도입에 이어 보상위원회ㆍ내부거래위원회 설치까지 법제화 하는 분위기다. 지난주엔 회사기회 유용 금지, 자기거래 제한범위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렇다면 최대주주와 경영진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배구조 선진화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도 투명ㆍ책임 경영이 해법이다. 2%도 안 되는 실질 지분율로 계열사 순환출자 등을 통해 50% 이상의 내부지분율을 확보, 그룹 경영을 쥐락펴락하는 밀실경영 황제경영 시대는 지났다.
시민단체 및 소액주주 활동 선진화는 군말이 필요치 않다. 과거 일부 총수들의 부적절한 ’전력’에 비추어 지배구조 개선은 글로벌 기업 도약을 위한 필수 과제이나 반대 급부를 노린 흠집내기는 용납하기 어렵다. 이는 과거 회사 가치를 좀먹었던 총회꾼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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